놀라운 이야기다. 실화라서 더욱 놀라운 이야기다. 이 사건의 기록을 보면 생명공학 연구종사자들은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황우석 박사”. 그와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의 차이점이라면 황우석은 교수출신의 나이 지긋한 남성이었고 홈즈는 대학 중퇴 창업자 젊은 여성. 이외 성공에 대한 야망, 허위 생명공학 기술의 과대포장과 무리한 개발, 환자 상대로 겁 없는 실행력, 언론이용, 사회 유력인과의 친분과 커넥션, 정치인 및 백악관(창와대)의 확장, 현란하고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는 언변 그리고 몰락하기까지 과정 (내부자에서 시작하여 언론의 탐사보도로 진실이 밝혀진)까지 모든 게 황우석을 연상시킨다.
테라노스 창업자 홈즈는 책의 서두에서도 나왔듯이 어릴 때부터 성공에 대한 야망이 매우 큰 아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잡스를 동경하고 실리콘밸리 성공에 대한 열망을 꿈꾸며 대담한 실행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실제 훌륭한 지성, 지능을 갖춰 스탠퍼드 명문에도 입학한 수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실리콘밸리의 몇몇 성공한 IT 스타트업 창업자처럼 학교를 중퇴하고 그녀의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야망을 설명하며 지도교수까지 반하게 만드는 언변의 달인이었다. 뛰어난 언변의 달인은 테라노스가 부정함 속에서도 거액을 투자 받을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다. 책에서 젊은 대학 중퇴의 그녀의 언변에 대해서도 뛰어난 점을 기록한 한 인상적인 상황이 묘사된다.
[그 후 2시간 동안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 꽤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휠씬 경험 많고 기업 내분에 숙련된 CEO라 하더라도 엘리자베스가 해낸 것과 같이 상황을 바꾸려면 꽤 애를 먹었을 것이다. 브로딘은 옛 속담이 하나 떠올랐다. “왕을 치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토드 서디와 마이클 에스카벨은 여왕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살아남았다. P.82~83]
수많은 경력과 경험을 가진 이사회에서도 그녀를 자르려고 하는 순간 홈즈는 이사회를 그녀만의 언변으로 뒤집은 것이다. 만약 이때 홈즈를 CEO에서 물러나게 했더라도 현재 테라노스는 최소한 실패하더라도 그녀도 회사도 치명타를 피했을 것이다.
홈즈의 이런 철없는 야망은 어떻게 기업을 세우고 성장시켰는지 면면을 알 수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을 배우게 된다.
먼저 기술 중심의 회사의 핵심은 누가 뭐라해도 일단 기본은 기술력이다. 이 기술력이라는 기본을 밑바탕에 두고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근본인 기술조차 사기라면? 언젠가 무너지는 일은 시간문제이다. 아마 실제 홈즈는 처음 회사를 세웠을 때 이렇게까지 사기로 점쳐지는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세상에 유명해지고 그에 맞춰 기술을 이끌어 올리고자 하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리스크 매니징은 형편없었다.
그녀의 성장공식은 이렇다. 처음 회사를 세울 때 뛰어난 언변으로 그의 지도교수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지도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창업에 대한 권위가 있었다.). 그 권위를 이용해 점차 투자자와 이사회를 끌어 모았다. 이런 이사회 면면 사람들은 먼저 자리잡은 권위를 믿고 이사회로 참여하고 투자자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어느 이사진이나 투자자들은 선행 투자자와 이사진들의 권위와 신뢰를 보고 참여하게 되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이사진과 투자자들은 점점 사회 권력층과 기득권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이들도 속고 참여하게 될 것인지. 모두 기존의 권위와 유명세만 믿고 들어온 것. 아무도 기술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권위 앞에 모두 눈먼 장님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권위와 홈즈의 뛰어난 언변은 생명공학 비전문가들인 투자자와 이사회를 사로잡았고 그들은 포로가 되었다. 일단 홈즈의 포로가 된 투자자와 이사진들은 테라노스의 이상한 낌새에 대한 보고나 소문을 들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두번째로 홈즈의 회사운영에서 소통을 철저하게 막았다. 소통은 회사운영, 제품을 실제 만들어내는 연구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부서가 협업하며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홈즈는 모든 부서간 소통을 단절시켰다. 기술엔지니어 부서와 혈액 생명공학 부서의 소통 단절은 제품의 완성도가 형편없이 떨어져 나갔을 뿐 아니라 일의 효율성도 지하층으로 추락시켰다. 각각의 부서는 소통의 단절되어 최종 제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만 일을 진행하며 문제점이 자신인지 타 부서 때문인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회사의 기술보안이라는 명목으로 소통을 단절시켰을 때 폐해는 예상외로 너무 크게 나타난 것이다.
[사내 컴퓨터 네트워크의 정보를 사일로처럼 분할하여 직원들과 부서 간의 의사소통을 방해했다. … 회사의 독점적 정보 및 기업 비밀 보호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조치였지만, 최종 결과는 생산성의 쇠퇴로 이어졌다. P.54~55]
세번째, 직원들의 입을 막았다. 제품과 회사문화를 위해 직원들의 입을 철저히 통제시키고 제품개발을 위한 생산적 건의사항도 홈즈의 생각과 다르면 철저히 응징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직원들의 발언은 강도가 약해지고 결국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뻔히 보이고 고치려 해도 불이익으로 말하지 않거나 잘못된 것을 고치지도 못하고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제품개발 효율성과 문제점은 너무도 크게 나타난다.
네번째, 결국 이는 모두 홈즈 자신, 즉 경영진의 독단적 밀어 부치기 식의 폐해이다. 무조건 안되면 되게 하라, 불가능은 없다 라는 식으로 정해진 일정에 맞춰 가능하지 않을 법한 목표를 정하고 밀어 부치기 식이다. 이는 부정을 낳고 무언의 압박으로 부정을 저지르게 한다. 결국 기술은 없고 사기라는 허위 기술에 홈즈는 대담하게 정치권과 제약회사, 유통업체 등에 제휴를 이끌어 내고 민간인에게 유례없는 피해를 안기는 당돌하면서 실행해서는 안될 일을 실행하는 대담함을 진행하게 된다.
이런 회사운영으로 부수적 피해는 너무 크다. 홈즈에게 속은 투자자들이야 그들의 잘못된 투자방식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그렇다 쳐도, 민간인에게 잘못된 혈액검사 진단결과를 주면서 건강에 대한 크나큰 폐해를 미친 점, 또한 홈즈의 기술을 믿고 입사를 결정한 수많은 인재들의 실망감과 그들의 인생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친 점 등.
결국 테라노스의 사기는 언젠가 밝혀질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왜 홈즈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대담하게 실행하려는 것일까? 그녀는 충분히 똑똑했고, 의욕도 있었고 사리 분별할 지성도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황우석도 그렇지만 홈즈 역시 세상을 급하게 바꾸고자 했던 마음만 너무 앞서나가 그에 따른 부수적 피해에 대해 장님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신적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일까? 여기까지는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압박하였을까? 무엇이 그녀를 사악한 경영자로 밀어 부치고 대담한 실행력으로 피해를 양산하고자 했을까? 책은 테라노스의 탄생과정부터 몰락까지 테라노스 직원 내부 제보를 중심으로 홈즈 주변인물을 인터뷰하면서 재구성하였지만 끝내 홈즈의 내면을 알 길을 없었다.
한편으론 그녀의 대단한 실행력과 뛰어난 언변을 다른 쪽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보다 정직하고 리더십을 제대로 배웠다면 그녀는 테라노스라는 사기기업이 아닌 또 다른 혁신적 기업을 만들 수 있었던 재능을 제대로 키워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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