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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하는 인문학적 상상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 그들의 이야기와 탐사 이후 논쟁_달로 가는 길

by P.Keyser 2020. 5. 6.

아폴로 11호 인류 최초 달 착륙. 사령선에 남은 한 우주인의 이야기, 달로 가는 길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내고 안전하게 귀환하게 할 것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한 말이다. 이 말에는 추상이 없다. 단순하고 행동적이며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언어로 선명하게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는 미국이 달에 인류의 발자국을 남기는데 모든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만들었다. 그후 1969720일 오후 318(휴스턴 시각 기준) 이글 호가 착륙하였고, 첫발을 내민 닐 암스트롱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개인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 년 7월 인류 최초 달 착륙의 발자국, 닐 암스트롱

아폴로 (Apollo)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주인이 직접 쓴 달 착륙 프로젝트의 당시 역사적 이야기와 배경, 그들 조직 내 이야기를 저자의 관점에서 쏠쏠하게 알려준다. 나사 (NASA)와 로켓 제작사의 관계, 나사 (NASA)의 성격, 달 착륙의 어려운 문제, 아폴로 프로그램의 과정, 우주인 선발 및 훈련, 우주선 사고와 희생, 달 착륙 성공 후 나타난 논쟁 등 우리가 몰랐던 배경의 이야기와 생각해볼 여지를 에세이로 엮었다.

 

책은 크게 (1)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고 훈련하는 과정, (2) 달로는 길, 착륙, 귀환, 그리고 (3) 달 탐사 이후의 상황3 부분의 이야기이다. 이중 메인은 역시 달 착륙 / 귀환이며 이를 위해 앞 뒤 구성을 엮었다.

 

달 착륙 프로그램은 대부분 아폴로 (Apollo) 프로젝트만 아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케네디의 선언 이후 제미니 프로젝트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나아갔다. 저자 마이클은 공군 조종사로서 지원하여 선발되었고 첫 번째 달 착륙 우주선에 타게 될지 안 될지 모르고 그저 삶의 갈림길에서 한쪽 길을 선택하다 보니 인류 최초 달 착륙선 조종사가 되었다. 즉 운이 좋았단 이야기다. 관련 에피소드로, 저자는 원래 첫 달 착륙선의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다. 첫 달 궤도선인 아폴로 8호가 돌아오고 아폴로 11호 승무원 명단은 닐 암스트롱, 버즈 그리고 저자가 아닌 프레드 헤이스였다 (8호 예비승무원이 다다음 호 (11)의 주 승무원으로 되는 시스템). 하지만 저자 콜린스는 비행 스케줄 변화로 원래 달 착륙선의 조종사에서 달 사령선 조종사로 진급되었다. 이때 달 표면을 걸을 기회를 잃은 대신 인류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한 생명체로써)최초로 달 뒷면을 혼자서 사령선을 타고 날았다. (달 뒷면에 홀로 있으면 지구와 모든 통신이 두절된다. 말 그대로 세상에 유일하게 혼자. 절대적 고독의 시간을 겪었다.)

 

비행 전 기자회견에서 눈치챘지만 사람들은 나를 고독한 사나이로 부를 것이다. (아담 이후로 이런 식의 고독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 달 뒤로 넘어가는 순간 지구와 무선통신까지 끊기면서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나는 혼자다. 진정 혼자다. 이 공간에서는 세상에 알려진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단절되어 있다. 내가 유일한 생명체다. 만일 인류의 숫자를 세어보라고 한다면 30억 외 달 반대편에 둘, 그리고 이쪽에 오직 신만이 아는 한 사람을 더해야 하리라. 혼자라는 느낌은 강하지만, 두려움이나 외로움보다는 자각, 기대감, 만족, 확신, 환희에 더 가깝다. P.493

 

아폴로 11호 우주인 3인방.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사령관), 콜린스 (사령선 조종사, 책의 저자), 올드린 (이글호 달 착륙선 조종사)

이렇게 11호의 사령선으로 정해지고 어느 누구도 11호가 최초 달 착륙선이 될지 장담하지 못했다. 그 앞서 아폴로 8, 910호의 임무를제대로 성공해야 하며 만약 하나의 문제점으로 달 착륙의 보완사항이 생기면 그 임무를 11호가 맡고 달 착륙은 그다음호에게 갈 수도 있었다. 이뿐이랴, 아폴로 10호에서는 달 착륙을 위한 최종적 연습 개념으로 실체 착륙선이 분리되고 달 표면 15킬로미터까지 내려간다 다시 올라가 사령선과 도킹하는 과정이다. 10여 년을 연습하고 모든 걸 완벽히 준비했는데 고작 달 상공 15킬로미터에서 다시 사령선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어느 책임자가) 바로 달 착륙을 결정한다면 10호가 최초의 착륙선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1969년 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 5월이 되자 어느 순간 다음 비행 승무원이 되어 있었다. 톰 스태퍼드, 존 영, 진 서넌이 518일 정오경, 케이프의 발사대 39B를 떠났다. 그리고 3일 후에 달 궤도에 도착해 가까이에서 달을 지켜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인류가 되었다. 스태퍼드와 서넌은 훨씬 더 자세히 볼 참이었다. 착륙선 스누피를 타고 15km 상공까지 내려갔다가 존 영의 찰리 브라운으로 돌아오는 게 임무이자 탐사의 주목적이었다. …. 닐과 버즈,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톰과 진이 안전하게 CSM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아폴로 11호가 무미건조한 리허설을 반복하지 않고 착륙할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P.423~424

 

버즈 올드린이 달 착륙선에서 내려오는 장면. 처음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불행하게도 인명을 앗아간 큰 사고가 있었다. 아폴로 8호만 해도 560만 개의 부속, 150만 개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99.9퍼센트의 신뢰도로 작동하더라도 여전히 5,600개의 결함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1967127일 금요일 케이프-케네디 발사대 34번의 012호 우주선 (아폴로 1)의 발사 전 화재로 3명의 우주인 (그라섬, 화이트, 채피)이 화재로 희생되었다. 이 화재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업무 처리 방식을 바꾸었다. 그 전에는 나사 (NASA)와 로켓 제작사의 불협화음으로 불만과 비난이 많았으나 곧바로 정신 차리고 비난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하고 실제로 훌륭하게 모든 문제점을 처리하였다. 전화위복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항공산업엔 하나의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바로 비행체의 무게만큼의 서류가 기록되고 만들어져야 이륙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주산업이라면 서류는 너무도 중요한 자원이다. 서류가 없으면 혼돈이 발생한다. … 나사 (NASA)와 노스아메리칸은 각자 특유의 전문성을 앞세워 문제를 파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불만도 비난도 있었으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비난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프로그램을 다시 (이번에는 안전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52

이 인용문은 우리나라에게도 안전, 사회 시스템, 정치영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아폴로 8호를 통하여 인류 최초로 지구권 중력장을 벗어나 인간의 눈으로 처음으로 지구의 전체 모습을 한눈으로 보게 되고, 10호를 통하여 달 착륙선으로 달의 상공 15킬로미터까지 내려갔다 올라오고 마침내 11호를 통하여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저자 마이클 콜린스는 최초의 달 착륙선의 사령선 조종사로서 고독한 사나이로 불렸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이글호가 달에서 이륙 후 사령선 콜럼비아호와 도킹하기 직전. 사령선에 혼자 남아있던 콜린스가 찍은 사진으로 암스트롱과 버즈의 사령선 귀환을 담고있다. 콜린스 스스로 최고의 사진으로 칭하며, 달, 지구, 달 착륙 우주선(이글 호)이 모두 한 프레임에 있다

달 착륙 성공 이후의 상황은 어떨까? 사실 대중은 11호의 성공이 끝인 줄 알았지만 사실 달 탐사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임무 실패한 아폴로 13 (목숨을 건 귀환작전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월면차를 동원하여 탐색범위를 넓힌 아폴로 15호의 등장, 17호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언론과 대중은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대중은 끝난 슈퍼볼을 왜 자꾸 보여주지라는 생각, 16호가 발사될 때는 워싱턴 포스트의 헤드라인이 달 위의 두 얼뜨기라고 하였다. 이런 이면엔 가장 까다로운 질문… 그 돈을 들여서 그럴 가치가 있느냐 의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 당시 미국 GDP의 상당 부분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물론 엄청난 예산으로 17호 이후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지만 저자 마이클은 밴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 반문하여 다른 면을 이야기한다. “신생아는 어디에다가 쓸까요?

 

인류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대륙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인간은 능력이 있을 때마다 늘 떠났고 탐험하였다. 인류는 호기심이 본성인 것이다. 탐험은 사람의 관심을 넓히고 사고방식도 바꾼다. 1948년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인류가 지구 전체 모습을 한 프레임에 촬영한다면 가장 강력한 신개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연구가 낳은 뜻밖의 부산물을 미국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끝으로 저자가 말하는 한 대목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책에는 이 외 많은 에피소드와 이야기가 있으니 달 탐사와 우주 프로젝트에 흥미 있거나 아폴로 프로젝트의 여러 비화를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세상의 정치지도자들이 20만 킬로미터 밖에서 이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지구는 하나다. 작고 연약한 지구. 그곳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닫고자 한다면 20만 킬로미터 밖에 나가 지구를 보아야 한다. p.568~569

 

달로 가는 길. 한 우주비행사의 이야기. 마이클 콜린스 지음. 달 착륙 50주년 재 출간판 2019. 

  • 책은 실제 콜린스가 달에 다녀온 후 5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출간되었다. 50주년 재출간판에는 2009년판 서문, 2019년 50주년 서문이 포함되어있다. 저자 마이클 콜린스는 아폴로 11호 우주인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있다. (2020년 5월 기준)

* 함께 보면 더 좋아요. (달 탐사 아폴로 프로젝트의 그 밖의 15가지 이야기... 우주선에서 소변을 배출한다면?,,,)

 

달 착륙 우주비행사의 연봉은?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 15가지 이야기

1. (Fe2+, Mg)Ti2O5. 1969년 11호가 가져온 달의 암석으로 아밀콜라이트 (Armalcolite)라고 명명된 암석의 분자구조식이다. (지구에 없는 신 광물). 이름은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 아폴로 11호 우주인 3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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