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찰하는 인문학적 상상

플란다스의 개. 슬프고도 아름다운 우리의 자화상

by P.Keyser 2020. 6. 15.

플란다스 개

TV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사람으로서 서점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책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린시절 보았던 그 만화영화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랄라라 하는 주제가와 파트라슈라는 개 이름은 기억에 선명하다. (이쯤되면 내 나이가 최소 얼마 이상이라는 답이 나온다 ^^)

 

분량은 반나절에서 하루동안 다 볼 정도이고 내용도 집중력이 흐트려 지지 않게 재미와 감동눈시울 붉힐 만한 감정을 겪으며 읽었다. 태어나자마자 술주정뱅이의 짐꾼으로 무거운 수레를 끌며 학대당하는 개 파트라슈, 2살도 안되어 어머니가 죽어 가난한 외할아버지의 손에 키워진 넬로. 술 주정뱅이 주인으로부터 학대 받던 파트라슈가 거의 죽기 직전 버려져 어린 꼬마 넬로와 그의 외할아버지에 의해 발견된 첫 만남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이후 10년 이상 파트라슈는 은혜를 잊지 않는 충성심있는 개로서 친구 넬로와 평생 우정을 쌓아간다. 전쟁 참전 후 부상의 과거를 가진 할아버지는 점점 건강이 쇠약해지자, 생계를 위해 파트라슈와 넬로가 할아버지 대신 녹색 수레에 우유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가난속에서도 이웃의 따스한 도움도 받고, 동네에서 가장 부자집 딸 알로아와의 사랑이야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상처도 받지만 넬로는 자신의 꿈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소년과 개의 우정스토리에서 우리 인간 사회의 단면 많은 부분이 녹아 들었다.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 (넬로)와 어울리며 사랑에 빠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알로아 아버지 (권력자). 그 권력자의 한마디에 마을 여론이 바뀌는 현상.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 현상.

 

모두 우리의 자화상이다.

 

동네 제일가는 부자집 알로아 아버지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만약 자기가 알로아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의 딸이 동네에서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면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우유배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자신의 딸이 사귀는것을 허락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를 쫓아내기 위해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범인으로 몰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아이를 내 쫓으려고 하고, 동네 주민은 진실이 아닐 것이라고 양심 깊숙한 곳에서 알고있지만 모두 애써 외면한다. 심지어 평소 그 아이가 걱정되어 추운 겨울 땔감 하나, 수프 한끼를 제공해주던 어느 동네 주민조차, 넬로가 추운 겨울 쫓겨나듯 동네를 떠날 때도 그를 외면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과연 우리라고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 자문해 본다.

 

평소 뉴스에서 나쁜사람, 비도덕적인 사람들을 욕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이 그들과 크게 다른점이 없다는걸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 있다. 프란다스의 개를 보며 알로아 아버지, 동네 주민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바로 그들과 다름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작품에서는 가난한 운명도 순응해야 한다고 믿는 할아버지와 가난은 죄가 아니라며 희망을 꿈꾸는 넬로 사이의 감정교차가 대비가 나온다.

 

[“우리는 가난하단다. 신이 준 대로 받아들여야 해. 힘들어도 받아들여야지. 가난한 사람은 선택할 수 없단다. … 가난한 사람도 때로는 선택할 수 있단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P.92]

 

기독교적 사랑을 강조하는 시대상이지만 현실적 세상은 가난이 죄가 되고 돈이 없으면 희망도 품어줄 수 없는 사회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가난이 죄가 되지 않고 평등을 내세우는 교회조차 높은 첨탑만큼 소년의 꿈을 아주 높은 벽처럼 느껴지고 결국 이들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예감이 들어 맞게 된다.

 

그림을 보여주지 않다니 정말 너무해, 파트라슈. 가난해서 돈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이 저걸 그렸을 때 가난한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거야. … 그 아름다운 것을 어둠속에~ 그림은 빛도 보지 못하고 어떤 눈길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부자들만 돈을 내고 보는거야. 내가 만약 저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 … <십자가를 세움><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영광을 보려면 은화 한 냥이 필요했고, 넬로가 그 은화를 구하는 것은 성당의 첨탑 높이 만큼이나 까마득한 일이었다. P.69

 

파트라슈와 넬로는 그들이 함께해온 우정처럼 마지막까지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생을 마감한다. 이들을 죽인건 누구일까? 그저 어린시절 한 가난한 소년과 부잣집 딸의 사랑, 개와의 우정이야기만 기억하지만 세월이 흘러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텍스트로 읽어보는 원작은 돈, 권력, 자신의 이익앞에 무너지는 인간사회와 힘 없는 가난이 죄가 되고 희생당하는 우리 인간사회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다. 

 

플란다스의 개. 위다(Ouida, 1839~1908년)지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