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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하는 인문학적 상상

5.18 광주민주화항쟁. 끝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 현대사_소년이 온다

by P.Keyser 2021. 5. 3.

5.18 광주 민주화항쟁 현장 당시 한 소년. 그날의 참상, 한강, 소년이 온다

1980 5 18, 518. 민주주의 허울을 쓴 독재정권의 서슬퍼런 시대의 대한민국 현대사 이야기이다. <소년이 온다>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암흑적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는 작품으로, 광주의 중학생 소년을 중심에 두고 당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가 한강도 광주에 어린시절 보내다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 자신이 살던 광주의 집에 이사 온 가족의 아이가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다. 이 소년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한국 현대사를 대변하며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인다. 인권, 여공, 노동, 여성, 검열, 고문. 당시 작가 한강은 어린 소녀로서 광주의 집에 새로 들어온 소년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의 가족에게 우연히 듣게 되면서 (한강 아버지가 당시 광주 중학교 교사였으며 그 학교의 학생이 이 소설 주인공이자 자신의 광주 집에 이사온 가족이다)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년의 가족과 인터뷰, 518 관련 자료조사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매우 힘들었다. 문학소설이지만, 사실에 입각한 불과 몇 십년 전 실재했던 이야기 인 것을 생각하며 인물들이 겪은 경험은 독자의 마음을 매우 쓰라리게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직도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이미 정치적, 공식적으로 5.18은 민주화 항쟁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서 (심지어 정치인중에도) 빨갱이, 북한간첩, 폭도들이라는 오명을 듣고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수많은 광주 시민들은 시신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 당시 총 책임자 전두환은 사법적 처벌을 받고 화해의 차원에서 사면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고 있지 않고 도리어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무례하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인다. 공식적으로 518은 민주화항쟁으로 정리되었지만 가해자들은 아직도 아무말도… 사과도… 반성도…. 없다.

 

작품 초반 주인공 소년 (동호)는 광주 상무대에서 시민들에 의해 군인에게 죽인 시민들의 장례를 치뤄주는 장면에서 의문점을 표시한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 17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살해당한 시민들을 태극기로 수습하는 장면

국민을 지켜야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에게 총을 겨눴던 현실… 그 총에 살해당하는 시민들… 명백한 국가의 폭력이고 국가의 살인인데 광주시민들은 애국가를 불렀고,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 안았다. 당시 광주시민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을 우리나라의 국가라고 보지 않았던 것이며, 허약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은 독재 세력과 그 세력에게 명령받은 군인들에게 탄압받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나라는 군인 세력에게 정복당하여 상처받고, 시민들이 살해당했던 것으로서, 우리 시민들은 이 폭력 세력에게 대항하며 우리의 소중한 자유 민주 대한민국을 찾아 살기위해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도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날려며, 피해자 시신을 태극기 관으로 덮었던 것이다. 시민, 학생들은 국가를 타도하라가 아닌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p.77]를 외치며 싸우기로 결기하였다.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금방 울음을 터드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그들이 내 옆구리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탄환을 박아 넣기 전에. P.59

영화 “변호인”의 노무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의 대사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보안 문제라고 탄압하고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이야! ] 영화 “변호인” 중에서

 

영화 “변호인” 노무현 역의 송강호 명사대. 국가란 대체 뭡니까?

살아남은 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당시 광주 시민들, 특히 항쟁에 직접 가담하여 살아남았던 사람들도 여전히 가슴속에 응어리를 가진체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체포되어 고문받으며 생긴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 그러면서도 여전히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파오고 음식앞에 탐욕적 입맛을 다시며 음식을 먹는 자신 스스로를 경멸하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시위현장과 동물취급을 받으며 고문을 받던 조사실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도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지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P.85

고문 후 석방되어도 끝내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던 교사 지망대학생, 조사실에서 끔찍한 고문으로 실형을 받고 나와서도 트라우마 후유증에 시달리는 (끝내 자살하는) 앳된 20살 대학생, 체포된 시민들을 인간 이하 취급하며 분열시키려던 군인들의 행태 앞에 인간성을 잃지 말고 죽음을 각오했던 순간을 일깨워 주는 중학생 영재. 박정희 시절 수출 외화벌이 경쟁력을 위해 저임금과 외면받던 노동자 인권, 특히 (어린) 여성노동자의 인권이 없던 시절 여공들의 삶을 조명하고 광주 항쟁당시 시민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새벽에 차를 타고 확성기로 광주시민들의 저항을 외쳤던 선주.

 

선주는 체포된 후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최악의 성적 학대를 국가의 공무원이라는 군인 경찰에게 인생을 짓밟혀버렸다. 그녀는 어린시절 당시 여느 여공처럼 중학생도 마치지 못한 나이에 방직공장에 취직해 하루 12시간 이상, 한달에 2번 쉬는 극한의 노동 앞에서 국가 수출산업 최선선의 한낱 도구로서 여공이란 이름으로 몰린 흔한 어린 여성이었다. 밤하늘의 달을 보고 '밤의 눈동자'라는 표현이 무섭다던 겁 많고 순수했던 어린 여공이었다. 그런 선주는 여공시절, 알몸시위, 광주항쟁을 거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누가 그녀를 이렇게 파괴했을까…. (박정희, 전두환…). 이들 뿐 아니라 항쟁당시 여고생 은주, 의사를 꿈꾸던 어린 여공 정미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수많은 시민들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실종자들) . 이들은 아직까지 고통의 순간을 꾸역꾸역 삭히며 여전히 우리 주위에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햇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P.126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 브리핑 [소년이 온다] 인용문 소개. 광주 시내 민주화항쟁 이후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도심의 분수대가 가동되자 느껴지는 이질감을 표현한 장면. 진실규명 대신 하루빨리 묻혀 잊혀지길 바라는 것처럼

 가해자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P.77

광주항쟁당시, 국가의 폭력 책임자 정점인 전두환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 김대중 정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 역시 전두환의 독재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화합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사법부 처벌을 받던 전두환을 사면 시켜주었다. 그 결정 이면엔 지난날을 기억하며 가해자 전두환 그도 반성을 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며 새로운 미래로 가고자 하는 바램으로 사면의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그는 여전히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며 피해자들과 광주시민들에게 상처를 주고있다. 그는 1980 518에 이어 훗날 1987년 서울대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연세대 고 이한열 열사가 나올 때까지 (이 이야기는 영화 ‘1987’에 잘 그려졌다) 그의 독재시대는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진심의 사죄를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상대국을 침략하여 악랄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와 매우 흡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두환뿐 아니라 그의 명령을 받고 현장에서 시민을 학살하던 수많은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도 군인이기 전에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 중 하나였다. 상부의 명령을 최전선에서 직접 실행하는 군인들이야 말로 악마적 인간성의 본성을 그대로 투영한다. 작가 한강조차도 자료 조사하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었다지만 특별히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길거리 시민을 잡아 죽일정도로 폭행하고… 교회 예배가던 길 부부를 군인 눈에 걸렸단 이유로 남자를 반 죽일 정도로 폭행하고 울부짖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채 내동댕이 쳤던 군인들…. 실제 증언에도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위해 탔던 공항행 택시를 군인이 잡아 세워 무작정 신혼 부부를 폭행하던 현장... 이들을 병원에 후송하려던 택시기사를 군인은 끝내 살해하였다. 이 가해자들, 현장의 군인들은 하달된 명령을 지렛대 삼아 인간 본성의 악마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군인들도 군인이기 전에, 입대하기 전에 평범히 우리 주변에 살던 시민들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마적인 것이 있을까? 인류 역사를 보면 이런 피의 역사, 특히 민간인을 학살한 예시는 수없이 많다. 5.18이 일어나기 한 해 전 부산 마산의 민주화 투쟁 (부마항쟁)이 그랬고, 더 전에 제주 4.3사건, 전쟁 속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 (한국전, 베트남전, 2차 세계대전 관동, 난징대학살, 보스니아 내전…) 모든 대륙에서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듯 반복되었다.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p.134

반면 특별히 소극적 군인들도 분명 있었다. 발포명령에 일부러 시민들을 맞추지 않으려고 총구를 올려 허공에 사격한 군인들, 피 흘리던 시위대를 병원까지 업어 데려다준 군인들,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며 군가 제창을 거부한 군인들 (외신 카메라에 잡힘)도 있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던 군인도 있었다. 이들은 자기 의지와 뜻과 다르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또 하나의 피해자들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이 있고, 정부에서는 당시 현장의 군인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시민 학살 명령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따랐던 군인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집단 조직 의리 문화에 얽매여 있는지 모르지만) 입을 닫고 있다. 부디 살해된 실종자 시신을 찾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며 용기 있는 양심선언을 기대한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우린 인간이며, 우린 고귀하니까…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 동호는 작가가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선보였다. 소년을 포함하여 등장인물들은 광주의 5.18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은숙)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P.134~135 (교사지망 교대 대학생)

무엇 때문에 저렇게 무장했을까, 얼핏 생각했다. 우린 싸움을 못하고 무기도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하니까. P.156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P.173 (선주)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는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P. 212~213 (작가 한강 에필로그)

위 인용문을 보면 폭력 앞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인간만이 가지는 무언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고귀하니까 라는 선주, 성희언니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고귀하고 그 고귀함이 무너질 때 인간은 특별한 힘이 서로에게 전이되어 발현된다. 바로 양심.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순간 집단의 힘으로 양심이라는 게 발현되어 고귀함을 무너뜨리려는 세력 앞에서 저항하게 된다. 이 양심이라는 인간만이 가진 숭고함 힘이 반대로 작용할 때 바로 현장에서 고귀함을 학살하려는 군인들의 심리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두 인간의 양면성과 모순성을 지닌 어찌보면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진보한다. 결국 인간의 고귀함을 무너뜨리려는 인간은 언젠가 분명 양심이라는 가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점점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다. 바로 광주 민주화항쟁 시민들, 부마항쟁의 시민들, 이한열 열사, 전태일 열사처럼미처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양심의 가치를 지닌 시민들의 피를 희생하며 진보할 것이다.

 

진보적 이상이 세상에 비로소 안착될 때 진보는 보수가 되어가고, 새로운 인간 가치 (또는 그 이상 (理想, ideal) 너머 지구 환경 생태적 가치…)를 위해 보다 진보된 진보가 탄생하고... 이렇게 점점 세상은 진보한다.

 

부디 살아남은 유가족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지길 바라며, 당시 군인들의 진정어린 사과와 양심적 선언을 다시한번 호소한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을 유가족에게 돌려주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주인공 친구인 정대가 읊은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그는 자신을 죽인 총 쏜 군인의 손가락 역시 “따뜻한” 이란 표현을 썼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뭉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듯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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