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는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이다. 매트릭스 1, 2, 3편에는 수많은 생각거리와 인상적인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를 뽑으라면, 1편에서 모피어스가 주인공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제시하며 선택의 자유와 기회를 준다. 빨간약은 매트릭스속에서 지금껏 살아오듯이 현실에 안주하고 편안하게 살되 진실과 멀어지고, 파란약을 먹게 되면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진실을 알게 되며 그 진실속에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당신이라면 어떤 약을 선택하겠는가?
인간에게 사랑받는 애완견처럼 그저 그런 동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행복하게 사느냐…
스스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뇌, 번민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인간으로 사느냐…
영화 속 선택의 문제와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의 작품 속 이야기에는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다. 아마도 매트릭스 영화 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분명 데미안을 읽고 영감을 받아 매트릭스 세계관을 구축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데미안은 주인공인 싱글레어가 유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성장을 다룬 성장소설이면서 자신의 내면의 변화와 갈등을 그리는 작품이다. (아마 저자인 헤르만 헤세의 성장기를 다룬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린시절 싱글레어는 누구나 그렇듯 사소한 거짓말 하나가 자신의 발목을 스스로에게 잡혀 고통의 시간을 갖는다.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하찮은 것이지만 당사자인 싱글레어의 입장과 관점에서는 인생의 커다란 위기로 인식하게 된다. 주인공이 느끼는 인식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 인 것이다. 이는 어린 유년기 아이들에게 매우 정상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의 자신의 어리석음에 피식 웃었을 때가 있는 것처럼.
데미안은 주인공 싱글레어가 성장하면서 그런 인식이 한계를 넓혀가며 내적 성장을 이루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작품 속 나오는 이 인용문은 많이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몇 년 전 아이유와 김수현이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인용된 문장으로 데미안의 대표적인 명문이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주제와 상징적으로 맞아떨어지는데 데미안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부터 데미안 하고자 하는 말을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1. 우리가 배운 세계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자
전통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과 학교에서 이 나라에서, 이 문화권에서 살아갈 규칙과 행동, 사고방식을 배우며 살아가게 된다. 이는 훗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이후 그 사고에 젖어서 순응하는 사람에 되길 경계하자. 인간사회에 기득권이나 힘있는 조직이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심어놓은 교육 (예를 들어 현대사회 노동자를 숙련시키기 위해 탄생한 제도권 교육은 표준화된 인간을 배출하고 있다.)은 때론 우리를 특정한 프레임에 자신도 모르게 우리 문화와 사회에 최적화된 방식의 인간을 길러내는 것 아닌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카인 자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설명한 거야. ‘표식을 지닌 자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표식을 지닌 자들은 불길해서’라고 말이야. … 그러니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나날들을 보상받으려고 그럴듯한 별명과 전설을 붙여서 복수한거야.“ P.43
“내면의 소리가 들리거든 즉시 그것들에 자신을 내맡기게. 처음부터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신의 뜻과 일치하는지, 그들의 마음에 들지를 묻지는 말라구!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쳐. 그렇게 하면 안전하게 인도로만 걷는 화석이 되고 마는 거야.” P.148
2.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자.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해야
암흑이 있어야 밝음이 존재하며 더욱 빛이 난다. 악이 있어야 선이 존재한다. 절대 선과 절대 악도 없다. 절대 악을 무너뜨리면 절대 선을 다시 분열하여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악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은 점점 진보하게 된다.) 동양의 음양의 이론처럼, 정치사상의 좌파, 우파처럼, 또 신과 악마처럼, 어느것 하나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을 말해준다. 그저 다양한 관점의 차이이다. 특히 인간은 경계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이 경계에 매몰되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어찌보면 이 경계도 결국 같은 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리된것인지도 모른다. 밝은 세계, 어둠의 세계 상반된 관점에서 틀림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다른 것들도 있어. 그 나머지 것들을 모조리 악마적인 것으로 취급하니까 이쪽 세상의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지. 신을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찬양하면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性)을 아예 묵살하거나 악마적이라고 단죄하다니!” p. 83
“‘신성과 악마성을 결합한다.’ … 우리가 숭배하는 신은 인위적으로 구분된 절반의 세계 (공적으로 허용된 ‘밝은 세계’)만 포용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온 세계를 숭배할 수 있어야 하니까, 악마까지도 포용하는 새로운 신을 갖거나 신에게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해야 한다고.” P.125
“‘운명과 기질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두 개의 이름이다.’” P.113
어찌보면 우리는 어릴때부터 받아온 교육, 학교와 문화속에서 순응하며 내면에 받아들여진 의식속에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느편에 설것인지 요구하고, 선택을 강요하게,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보다 한 차원 높은데서 바라보면 이는 인위적 분리이고 이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과 경계선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의 차이’에 따라 분리되었을 뿐이었다.” P.197
3. 당신은 행복한 애완견이 될 것인가,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서두에 언급한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선택의 문제이다. 이 장면의 대사를 살펴보자.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네가 노예란 진실.. (불행히도 당신이 노예란 사실을 자각조차 못한다는 의미.) … 파란 약을 먹으면 꿈에서 깨어나. 네가 믿고 싶은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된다.” 영화 매트릭스 1편 중에서
주인공 네오는 결국 진실을 알고자 노예(행복하게 살아가지는)에서 벗어나고자 파란약을 선택하며 영화가 전개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헤르만헤세는 데미안을 통해서 우리에게 빨간약을 먹는 건 스스로 나무나, 돌, 운 좋아 봐야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에 세계를 지니고만 있는 것과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나게 달라! … 그렇지만 그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반대로 나무나 돌, 기껏해야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네. 그러나 이 인식의 불꽃이 최초로 번쩍 빛나는 순간, 그는 곧바로 인간이 되지.” P.143
이처럼 데이안은 한 아이의 유년부터 청년기까지 내적 성장을 다루며 때론 지금 생각해도 너무 파격적인 문장까지 등장한다. 데미안은 마지막에 인간의 갈등의 종편인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마치게 된다. (작품의 출간된 시기로 봐서 1차 세계대전을 말하는 것이리다.) 문학 속 주인공 싱귤레어의 멘토이자 친구, 제목이기도 한 데미안과 인연도 문학작품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독자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작품으로 초반에 단순한 유년기 전개되는 재밌는 드라마같은 스토리부터 시작하여 중반 집에서 기숙사 학교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청소년기 방황과 내적 성장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여러분은 빨간약과 파란약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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