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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하는 인문학적 상상

문학을 좋아하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내성적인 한 남자의 반전없는 인생이야기-스토너

by P.Keyser 2021. 7. 30.

스토너. 어찌보면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부모의 보살핌 속에 집안 농사일을 도우던 스토너는 어렵고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배우지 못한 삶을 끊어 내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농사를 잘 하기 위해 배움을 얻고자 입학한 농과대에서 주인공 스토너는 문학이라는 학문에 매료되어 자신의 평생 업을 깨닫기 시작하고, 석박사 과정을 마쳐 대학교수로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속에서 1차대전 전쟁속에서 군대에 자원입대한 친구가 유럽전선에서 전사하는 일을 겪고, 첫눈에 반해 버린 여인을 만나 어리숙한 청혼과 결혼을 하고,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속에서 자신이 가정의 화목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인내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부모님과 장인어른의 장례식, 그런 시간의 흐름속에서 교수생활을 통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며 인생을 짐을 짊어지며 나아간다. 딸이 태어나고 무정한 아내를 대신해 딸바보가 되며 집안일, 육아, 가정경제를 홀로 책임지는 고된 시간표 속에서 자신이 강의하는 학교의 강사와 또 다른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동료 교수와의 불화를 겪는어찌보면 평범한 갈등,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듯한 인생, 또 달리 보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아내의 영향으로 멀어져 버린 딸에게조차 외면받는 그런 외로운 가장으로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와 교편을 잡으며 학문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그의 여정을 살았다.

그리고 끝내 자신에게 해를 입히기만 했던 존재들에게 짜릿한 복수도 없이 그저 여생을 암과 함께 마감한다.

스토너.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무엇을 기대했는가. 오늘도 수고한 삶이라고

이 주인공의 삶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평범한듯 평범치 않은 주인공 스토너의 삶은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닐까? 화나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고 승리를 쟁취하는 일도 없다. 항상 당하기만 하지만 (딱 한번 동료교수 로랜스에게 이긴적이 있긴 하다) 그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얼 기대했니? 그러면서 우리에게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읊조리는 것 같다.

 

스토너가 중년에 접어들 때 가정에서 외면받고 학교일은 여러 가지 일로 치이며 마음 속 어둠이어 밀려들어올 때 캐서린이라는 대학 강사와 사랑에 빠진다. 캐서린에게 삶의 어려움은 다 지나간다고 위로할 때 주인공 스토너 역시 자기도 위로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P.264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고.. 한발짝 물러서서 보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니 걱정말라는 이 대목에서 나 역시 큰 위로를 받았다. 가정에서, 사회생활에서, 직장내 생활에서 이런 저런 일로 골치 썩히고 항상 걱정이 앞서는 삶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 ‘래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자.’ 라는 생각이 들며 모든 짓이 하찮아 보이며 나를 위로하게 된다. 그리고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고 빠져들 수 있는 무언가, 책과 문학에 대한 애정속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만들며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만든다. 열정이 될 만한 그 무언가만 있다면 하며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는 살아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괜찮은 인생, 우리는 잘 살아있고 잘 살아가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試)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P.353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그녀에게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 조용한 여름날 오후에 어딘가 멀리서 아무것도 모른 채 터뜨리는 웃음소리.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더니,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P.388, 390, 391

 

스토너.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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