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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하는 인문학적 상상

방송국 PD가 시골에서 4500만원짜리 폐가를 사며 벌어진 일. 현대 도시인의 판타지_오늘을사는 어른들. 오느른

by P.Keyser 2021. 8. 4.

이 책을 서점에서 구매하는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3번 놀랬다. 첫째는 책을 처음 사는 순간 손에 집어든 책이 파본인 줄 알았다. 바로 책의 등이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세워 진열할 때 보이는 제목이 없고 실로 책을 묶은 책의 누드를 보는 듯한 느낌. 책 제작이 잘못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걸로 바꿔 보니 웬걸... 이것도 그렇고... 그래서 다 뒤져보니 모든 책이 이렇게 제작되었던 것이다. fresh한 순간이었다. 이 책을 손에 쥐고 계산대에서 계산하려는데 서점 점원마저 순간적으로 책의 상태를 살펴보며 파본이 아닌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았던 순간… (나는 속으로 말할 준비가 되었다. 파본 아니라 정상입니다. 그런데 점원은 바로 책을 포장해 주었다.)

 

책의 한쪽면. 처음엔 파본인줄 알았다_오느른, 최별 글

두번째는 책 속 이야기이다. ‘오느른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우연히 접하고 한 젊은 PD, 최별 작가는 무작정 시골에 내려가 폐가를 사서 집을 고치는 이야기를 대리만족을 하며 지켜보던 채널이었다. 나 자신이 꿈으로만 꾸던 생활에 동경을 담아 지켜보던 채널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레짐작 이 책은 그동안의 시골에 내려가서 폐가를 사고 고치며 그 생활속에 시간의 흐름속에서 녹아 내려간 스토리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보기 좋게 빗나갔다.

 

4개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서울 여자 최별PD (이자 작가)는 전북 김제 어느 한 시골마을에 정착하며 그때 그때 느꼈던 느낌을 표현한 시적 느낌의 에세이였다. 마지막 놀란 점은 예상보다 적은 글과 함께 수많은 사진 그림이 꽉 채워진 책이었다. 여느 아름다운 시골 화보집을 보는 느낌이 더 강했다. 덕분에 이 책은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고, 또 덕분에 아름다운 시골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눈도 호강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사진이 통으로 페이지를 채울 때면 그림을 감상하면서 꽁으로 페이지를 읽었다는 나만의 만족감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이 책을 사고 다 읽을 때까지 3번을 놀라며 나 역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평생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직장생활, 누구나 부러워하는 지상파 방송사 PD인 최별 작가는 어느날 충동적으로 시골에 여행 갔다가 김제 평야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덜컥 300평짜리 대지위의 115년 된 폐가를 4500만원에 사게 된다.

 

최별 작가는 말한다. 쉬고 싶어 샀다고. 그 쉬고 싶다는 의미는 현대 도시인이면 다들 느끼는 쫓기듯, 최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삶에서 한 발짝 물러 떨어져 풍경이 좋은 한적한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최상의 효율을 추구하는 기계도 아니고 프로그램대로 실행되는 알고리즘처럼 코딩된 인생이 되길 거부하는 사람이니까. 시골에서 폐가를 사고 그 집을 다시 고치고, 날마다 관리해줘야 하는 300평의 대지는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인데노동을 요하는 그곳에서 작가는 쉰다는 느낌을 시골생활에 적응하듯 제대로 표현한다.

 

어쩌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쉬고 있는지도 몰라요. 쉰다는 게 누구에겐 어떤 말일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나에게 집중해주는 것이었거든요. (p.45)

그리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어느새 나는 생산성 높은 삶보다는 자신에게 고마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p.217)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왜 그토록 도시에서 벗어나고 느린 시간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은 이유를 언뜻 이해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작가처럼 충동적 실행도 하지 못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실행에 항상 머뭇거리는 이 태도가 원망스럽지만, 비단 이런 느낌은 나뿐 아닐 것이다. 가끔은 작가처럼 스스로 이야기하듯 가벼운 사람이라서 앞뒤 재지 않고 행동을 하진 못해도 나름의 대리만족을 하며 나도 언젠가,,, 아니 곧 움직일 때가 올 것이라는 희망 아닌 희망을 가지게 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는지 들킨 것 같으면서 나 혼자만 그런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위안도 얻게 된다.

 

세상이 자꾸 나를 속이려 하고 상처 주는데, 거기에 길들고 싶지 않아 정직하려 노력하고 진심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바보 같고 지쳐 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상황은 아닐 텐데, 자꾸만 혼자 싸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서럽고 억울하고 혼란스러운데도 여전히 옳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이 본인 +1명은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 끝없이 찾아오는 답 없는 우울함이 여전히 무서운 것도 본인 +1명은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 떠밀리듯 떠내려가듯 삶을 살면서도 방향을 잡아보겠다고 나름 저항하는 사람들이 꽤 지척에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 (p.232~233)

 

오느른, 오늘을 사는 어른들, 최별 지음, Barim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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